김병지(한국 한자: 金秉址, 1970년 5월 12일 (1970년 음력 4월 8일) - )는 대한민국의 전 축구선수이자 현 경영인으로 현재 강원 FC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 ||||||
---|---|---|---|---|---|---|
개인 정보 | ||||||
로마자 표기 | Kim Byung-Ji | |||||
출생일 | 1970년 5월 12일 | (53세)|||||
출생지 | 경상남도 밀양시 | |||||
키 | 184 cm | |||||
포지션 | 은퇴 (과거 골키퍼) | |||||
구단 정보 | ||||||
현 소속팀 | 강원 FC (대표이사) | |||||
청소년 구단 기록 | ||||||
1982-1984 1985-1987 | 밀양중학교 알로이시오전자기계고등학교 | |||||
구단 기록* | ||||||
연도 | 구단 | 출전 (득점) | ||||
1990-1991 1992-2000 2001-2005 2006-2008 2009-2012 2013-2015 | 상무 (군 복무) 현대 호랑이 / 울산 현대 포항 스틸러스 FC 서울 경남 FC 전남 드래곤즈 | 179 (2) 137 (3) 58 (0) 122 (0) 101 (0) | ||||
통산 | 597 | (2) | ||||
국가대표팀 기록 | ||||||
1995-2008 | 대한민국 | 61 (0) | ||||
지도자 기록 | ||||||
2009-2012 2013 | 경남 FC (플레잉 코치) 전남 드래곤즈 (플레잉 코치) | |||||
* 구단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정규 리그의 공식 리그 경기 기록만 집계함. |
1995년 6월 5일 코리아컵에서 코스타리카와의 경기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당시 대한민국 토종 골키퍼 중 돋보이는 활약을 하여 국가대표팀 간판 골키퍼로 자리매김했고, 월드컵에는 1998년 FIFA 월드컵과 2002년 FIFA 월드컵에 나섰다.
1998년 FIFA 월드컵에서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으며, 예선 3경기 동안 9점을 실점한다. 그러나 당시 대한민국의 수비가 불안정해 무려 3경기 동안 56개의 유효슈팅을 허용했고, 그 중 9개만 김병지가 실점함으로써 김병지는 그 당시 월드컵에서 야신상을 받은 프랑스의 파비앵 바르테즈에 이어 골키퍼 종합 방어율 2위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룩했고, 당시 야신상 후보로까지 거론되었다고 한다. 5:0으로 대패한 네덜란드전에서도 당시 네덜란드의 감독을 맡았던 거스 히딩크도 김병지의 선방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2001년 1월 27일에 열린 칼스버그컵 파라과이전에서 무리하게 공을 몰고 나가다 상대에 빼앗겨 실점 위기를 초래하여 전반전을 마치고 교체됐다. 이 사건 때문에 거스 히딩크 감독의 눈밖에 나서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뛰지 못했다는 오해를 하는 사람이 많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거스 히딩크의 자서전에 따르면 김병지는 이후 성실한 자세를 보여 다시 국가대표팀으로 발탁되었고, 월드컵 직전까지 이운재와 실력이 비슷하여 실제로 월드컵 직전까지는 번갈아 기용하여 서로 경쟁시켰다. 다만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인 폴란드전에서 이운재의 컨디션이 미세히 앞서서 그를 기용하였고, 이후 상태가 좋아 계속 기용하게 된 것뿐이라고 한다. 다만 이와는 별개로 거스 히딩크 감독이 대한민국에 내한할 때 열린 이벤트 경기에서 김병지는 히딩크 앞에서 드리블하는 모습을 재현해 주기도 했다.
그 뒤 이운재에게 주전 골키퍼 자리를 넘겨주어 2002년 11월 20일 서울에서 열린 브라질전 이후에는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되지 못했다. 2006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과도하게 불어난 체중으로 인해서 소속 팀이나 국가대표팀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던 이운재 대신 김병지를 발탁하자는 축구팬들의 여론이 있었지만 결국 선발되지 못했고, 이에 축구 팬들은 뜨거운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2007년 AFC 아시안컵 시즌 중 음주 파동으로 국가대표팀 1년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이운재를 대신하여 다시 기회를 얻은 그는 2008년 1월 3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칠레와의 A매치로 약 6년 만에 국가대표팀에 복귀해 선발 출장했지만, 허리 부상으로 전반전을 마친 후 정성룡으로 교체되었다. 이 경기는 그의 마지막 A매치이자, 정성룡에게는 A매치 데뷔전이다.
1999년 방정환 선생을 기리는 "한국 방정환재단"의 후원회장 겸 부총재를 맡기도 했다.
2005년에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진행하는 '2005 K-리그 유소년클럽캠프'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마산공업고등학교 시절 강호동과 실제로 싸운 적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그 둘은 마산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두 사람이었다.
2012년 개인통산 600경기 출전 달성 후 네이버 기사에 댓글을 단 한 네티즌의 이야기를 보고는 이에 답을 해줘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전후로 자신의 인터넷 방송을 시작했다.
This article uses material from the Wikipedia 한국어 article 김병지, which is released under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ShareAlike 3.0 license ("CC BY-SA 3.0"); additional terms may apply (view authors).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경우,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습니다. Images, videos and audio are available under their respective licenses.
®Wikipedia is a registered trademark of the Wiki Foundation, Inc. Wiki 한국어 (DUHOCTRUNGQUOC.VN) is an independent company and has no affiliation with Wiki Found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