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노 내각(일본어: 宇野内閣)은 우노 소스케가 제75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임명되어, 1989년 6월 3일부터 1989년 8월 10일까지 존재한 일본의 내각이다.
우노 내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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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총리대신 | 제75대 우노 소스케 |
성립연월일 | 1989년 6월 3일 |
종료연월일 | 1989년 8월 10일 |
여당·지지기반 | 자유민주당 |
내각각료명단 (총리대신 관저) |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가 리크루트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임해 이전의 다케시타 개조내각은 퇴진했다. 곧바로 주요국 정상회의를 앞두고 있어서 조급하게 차기 총리와 총재를 결정해야 하는 가운데 자유민주당의 유력 정치인들이 연달아 리크루트 사건에 연루돼 있었기 때문에 운신할 수가 없게 됐다. 그래서 다케시타 개조내각에서 외무대신을 역임하고 리크루트 사건과 거리가 먼 우노 소스케가 급거 자유민주당 총재로 발탁됨과 동시에 총리로 취임하는 등 각료를 인선한 끝에 내각을 발족했다. 각료에는 리크루트 사건과 관계가 적은 사람을 우선적으로 등용하면서 여론의 이미지 향상도 노렸다.
그러나 취임한 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서 우노 총리 자신에게 주간지 보도에 의한 여성 문제가 발각돼 궁지에 몰렸다. 이 ‘총리의 여성 문제’에 앞서 ‘리크루트 사건’, ‘소비세 도입’의 소위 ‘3종 세트’에 의해 같은 해 7월에 치러진 제15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자유민주당은 획득 의석수 36석과 과반수를 넘지 못하는 등 창당 이후 참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참의원 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참의원 선거 투표일 다음날 아침에 우노는 퇴진을 표명했다. 그 다음달에는 가이후 도시키가 후임 총재로 선출돼 우노 내각은 재임한 지 불과 69일 만에 단명 내각으로 끝났다. 이 재임 기간 69일은 히가시쿠니노미야 내각, 제3차 가쓰라 내각(제1차와 2차 내각을 합하면 지금까지의 역대 내각에서는 최장 기록), 하타 내각, 이시바시 내각에 이은 역대 5번째의 단명 내각이다. 또한 제3차 가쓰라 내각을 제외한 전후 내각에서는 4번째의 단명 내각이다.
우노 내각 시대의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
전임 내각의 정무 차관 9명이 유임됐다.
일본의 역대 내각 | ||
전임 내각 다케시타 내각 (개조) | 우노 내각 1989년 6월 3일 ~ 1989년 8월 10일 | 후임 내각 제1차 가이후 내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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