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李健熙, 1942년 1월 9일~2020년 10월 25일)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삼성 제2대 총수를 역임하였던 선대회장이다.
이건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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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정보 | |
출생 | 1942년 1월 9일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대구부 중구 인교동 |
사망 | 2020년 10월 25일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 (78세)
사인 | 신장 노폐물 신부전 |
성별 | 남성 |
본관 | 경주 |
학력 | 와세다대학 학사, 조지 워싱턴 대학교 MBA, 와세다대학 박사 (모교 Honorary 수여) |
소속 | 삼성(1987년~2020년) |
종교 | 원불교 (법명:중덕) |
키 | 160cm |
부모 | 아버지: 이병철, 어머니: 박두을 |
형제 | 3남 5녀 중 셋째 아들 |
배우자 | 홍라희 |
자녀 |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이윤형 |
1942년 1월 9일 경상북도 대구부 중구 인교동에서 이병철의 삼남으로 태어났으며, 이후 조지 워싱턴 대학교 경영대학원 MBA를 수료했다.
홍라희 여사와 결혼했으며, 홍진기 전 장관의 사위이다.
1987년 아버지 이병철의 사후부터 삼성전자의 회장을 지냈다.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이 터진 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2010년 3월에 삼성전자의 회장으로 경영에 복귀했다.
2014년부터는 심장마비 후 와병으로 아들 이재용이 경영을 사실상 물려받았다. 이건희가 경영하는 동안 삼성전자는 국내 대기업을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큰 성장을 이루었다.
1993년 29조 원이었던 그룹 매출은 2013년 380조 원으로 늘었으며, D램 하나 뿐이던 시장점유율 1위 제품은 20개로 늘어났다.
2014년 5월 10일 한남동 자택에서 호흡곤란과 심장마비 증세로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아 "이건희 사망" 보도가 나올 정도로 강북삼성병원에서 의식불명 상태에 있었으며, 2020년 10월 25일 새벽 4시경, 약 6년 5개월의 장기 투병 끝에 삼성서울병원에서 향년 79세로 사망했다.
이건희는 생전에 대한민국 최고 갑부였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세계 부자 순위 66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사망 직전 보유 재산은 약 23조 7,100억원(198억 달러)였다.
2014년 5월 10일 밤 호흡곤란 증세로 쓰러져 자택 근처의 순천향대학교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응급실에 도착한 직후 심근경색으로 심장이 멎었으나 바로 심폐소생술이 실시되어 호흡과 심장 박동은 살아났지만 의식은 깨어나지 못했다. 이후 삼성서울병원으로 이송, 스텐트 삽입술을 받고 보조기구를 부착하여 저체온 치료를 하였으나 깨어나지 못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이건희를 자택에서 계속 치료하는 방안과, 환자 이송전용 항공기 에어앰뷸런스에 태워 미국으로 옮겨서 치료하는 방안을 놓고 고심중이었다. 인터넷 매체인 아시아엔은 "이건희 회장이 5월 16일 오전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사실 무근으로 법적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이 해당 언론사에 정정 보도 요청서를 보냈으나 해당 언론사는 사망기사에 대해 정정보도를 할 이유가 없다고 이를 거부했다.
이건희는 위기를 강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경영에 복귀한 2010년 3월에도 "삼성전자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으며, 앞으로 10년 이내에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대부분의 제품이 사라질 것이므로 다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위기에 관한 어록
또한 이건희는 메기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고 전해진다. 미꾸라지가 있는 물 속에 메기를 풀어놓으면 미꾸라지들이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헤엄치기 때문에 오히려 건강해진다는 것이 '메기론'이다. 그러나 메기론은 이건희가 처음 한 발언이 아니라 아버지 이병철이 자주 했던 발언이었다고도 한다.[출처 필요]
메기론은 순서상으로 보면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J. 토인비의 '청어 이야기'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청어는 영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이다. 그러나 청어는 먼 바다에서 잡히기 때문에 싱싱한 청어를 먹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살아있는 청어가 대량으로 공급되기 시작했다. 그 비결은 청어를 운반해오는 수조에 천적인 메기를 함께 넣은 데 있다. 청어들은 메기에게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도망다니고, 그런 생존의 몸부림이 청어를 살아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온다" - "휴대폰 품질에 신경을 쓰십시오. 고객이 두렵지 않습니까? 비싼 휴대폰, 고장나면 누가 사겠습니까?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옵니다. 전화기를 중시해야 합니다." - 지난 1995년 애니콜 15만대를 불태우면서까지 휴대전화 품질향상을 중요시했고 이를 토해 이후 삼성전자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에서 애플과 지난 2015년 4분기 동률을 이루거나, 지난 2분기 '코로나 특수'를 누린 화웨이에 역전을 당하기도 했지만, 연간으로는 꾸준히 1위 자리를 수성하고 있다.
1995년 12월 5일 검찰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250억원의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불구속 기소하였다. 이건희는 노태우에게 9회에 걸쳐 250억원을 제공하고, 삼성그룹은 노태우의 대통령 재직 중 차세대 전투기 사업, 상용차 사업, 대형 건설 사업, 석유 화학 사업 등 각종 이권 사업에 본격 진출하였다.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방법원 형사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는 이종기에게 자신을 대신해 노태우에게 금원을 제공토록 포괄승인한 뒤 사후 보고를 받은 혐의(뇌물공여)로 이건희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1996년 9월 2일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여 형이 확정되었다.
이후에도 대선 기간 등에 여러번 여야 가리지 않고 정치자금을 뿌려대 소위 '삼성장학생'이란 말이 생기기도 했다. 능력있는 기업인이었음에도 민주화 이후에도 정경유착이란 구시대의 유물은 벗어나지 못한 셈.
2008년 4월 22일에 차명계좌와 1000억원대의 세금포탈 혐의가 적발되면서 이건희는 경영쇄신안을 내놓음과 동시에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하면서 전격 퇴진하였다. 이건희가 증여세를 피하면서 삼성그룹의 지분을 물려주려 했다는 의심을 받은 아들 이재용도 최고 고객 책임자(Chief Customer Officer)의 직위에서 물러났다. 7월 16일 양도소득세 456억원에 대한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후 2009년 8월 14일에 세금포탈과 주식시장 불법행위, 배임행위가 적발되어 추가 기소되었고 이에 대해 유죄를 확정되었으나 12월 29일 대통령 특별 단독사면을 발표하여 사면되었다. 2010년 2월 7일에 IOC에서도 견책 조치를 취했으며, 향후 5년간 산하 위원회 활동을 금지하였다. 그나마 IOC 위원으로서의 활동은 계속 할 수 있었다.
2018년 2월 8일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이건희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조세),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횡령) 혐의로 입건하였으나 조사 불능으로 시한부 기소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였다. 이건희는 삼성그룹 임원 72명 명의 260개 차명계좌를 개설하여 자금을 관리하면서 2007~2010년 귀속분 양도소득세, 종합소득세 등 82억 원 상당의 조세를 포탈(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조세))하였으며, 2008~2014년간 자신의 일가 주택 비용을 삼성물산 법인 자금으로 대납받아 30억원 상당을 유용(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횡령))하였다.
2016년, 언론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등장하는 성매매 의혹 동영상이 공개되었다. 동영상에는 유흥업소 종사자들로 보이는 다수의 여성이 등장하는데, 이건희 회장으로 보이는 남성이 젊은 여성에게 봉투를 건네는 장면과 함께 한 번에 500만 원씩을 줬다는 여성들의 목소리도 담겨 있었다. 기사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5차례에 걸쳐 서울 논현동과 삼성동에서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과정에서 동영상을 촬영한 이 모 씨 등은 삼성 측에 돈을 요구하며 협박성 거래를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그룹 측은 파문이 커지자 이건희 회장과 관련해 물의가 빚어지고 있는데 대해 당혹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회사 차원에서는 할 말이 없다고 선을 그었는데, 사실 성매매는 한국에선 불법일 뿐더러, 뭣보다 한 나라의 기업 회장이 이런 스캔들에 휘말린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덕분에 이미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 장기 입원해있던 이건희 회장은 경찰 조사를 피할 목적도 있었는지 사망할 때까지 외부에 두문불출하면서 지내게 된다.
전임 이병철 | 제4대 삼성그룹 회장 1987년 11월 19일 ~ 2005년 9월 4일 | 후임 이수빈 (직무대리) |
전임 이수빈 (직무대리) | 제5대 삼성그룹 회장 2006년 2월 5일 ~ 2008년 4월 22일 | 후임 이수빈 |
전임 이병철 | 삼성그룹 명예회장 2008년 4월 23일 ~ 2010년 3월 23일 | 후임 - |
전임 이수빈 | 제7대 삼성그룹 회장 2010년 3월 24일 ~ 2020년 10월 25일 | 후임 이재용 (직무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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