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포서

사포서(司圃署)는 왕실의 채소와 밭을 관리하던 조선의 관청이다.

조선 초 침장고(沈藏庫)이던 것을 1466년(세조 12년) 사포서로 고쳐썼다.

역사

조선 초 침장고를 두어 왕실에서 필요한 채소를 담당하게 하였다. 설치 당시 실무책임자인 제거(提擧)와 그 휘하의 별좌(別坐) 향상(向上) 별감(別監) 등의 임기는 1년이었으나 업무의 영속성을 위해 한 해에 2인 중 1인만이 자리를 옮길 수 있도록 하였다. 침장(沈藏)은 김장을 뜻한다. 1405년(태종 5년) 공조 예하에 두었다. 태종 시기 침장고는 혁파하여 왕실의 각 전(殿)에 나누어 배치하였다가 다시 세우기를 반복하였다.

1466년(세조 12년) 각종 과실과 채소, 밭을 관리할 사포서를 세우고 기존의 침장고 역할도 함께 하도록 하여 호조 아래에 두었다. 1712년(경종 1년) 사포서에 불이나 집무실인 서사와 창고가 모두 불에 타기도 하였다. 조선조 내내 유지되다가 1882년(고종 19년) 혁파되어 공물의 수납을 사옹원봉상시에 이첩하였다.

역할

사포서의 주요 역할은 왕실에서 쓰일 채소와 과일 등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고양 일대에 밭을 두어 채소를 길렀고 이에 필요한 인력은 한성부와 그 인근 10리의 주민들을 동원하였다. 사포서는 제철에 난 채소와 과실을 왕실의 여러 전에 공급하였는데 간혹 실수로 누락하거나 상한 과실을 올려 처벌받기도 하였다. 겨울에도 채소를 공급할 수 있도록 흙집을 지어 온실 재배를 하였다. 사포서의 전답은 개인에게 임대하여 소작을 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직접 재배하기 어려운 작물은 공납으로 징수하였다. 공납지는 주로 경기도 일원이었으며 조선 성종 시기 사포서가 징수한 공물은 곡초 2천 4백 84동 정도였다. 조선 후기로 가면서 과중한 공납은 사회문제가 되었다. 인삼이나 산삼과 같은 일부 약재도 관장하였다.

조직

사포서는 호조 소속으로 제조(提調)를 제외한 실무 책임자는 사포였다. 사포의 직급은 경국대전 당시 정6품이었으나 대전회통에서 종6품으로 삭감되었다. 이외에 7인 정도의 관리가 실무를 맡았다. 아문에 속한 이속으로는 서원(書員) 5인, 고직(庫直) 1인, 사령 5인이 있었다.

각주

내용주

참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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