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 키레나이카 속주(라틴어: Provincia Creta et Cyrenaica)는 로마 제국의 원로원 속주이며, 기원전 67년에 설립됐다. 크레타섬과 오늘날 리비아의 키레나이카 지방으로 이뤄졌다.
크레타 키레나이카 Provincia Creta et Cyrenae Ἐπαρχία τῆς Κρήτης καὶ τῆς Κυρηναϊκῆς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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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의 속주 | |
기원전 67년–서기 297년경 | |
주도 | 고르틴 |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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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 그리스 리비아 |
키레나이카 왕국의 마지막 왕 프톨레마이오스 아피온은 기원전 96년에 그가 아이가 없이 사망했을 때, 자신의 왕국을 로마 공화정에 넘겼다. 로마는 프톨레마이스 아피온의 이 유산을 빠르게 받아들였지만 직접적인 지배보다는 지역 통치자를 통한 행정으로 두는 걸 선호했다. 하지만, 기원전 70년대에, 유대인 정착자들이 주도한 폭동이 키레나이카를 불안정하게 시작했고 원로원은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가원전 74년, 이들은 키레나이카를 공식적으로 로마 속주에 편입하고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하급 관리직인 쿠아이스토르였던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를 파견했다. 원로원이 이런 하급 관리를 파견한 것은 성장하는 제국을 관리하는 데 로마 공화정이 지닌 정치적 어려움과 더불어 키레나이카가 기꺼이 로마의 지배와 그것이 가져오는 안정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쉬웠음을 나타낸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크레티쿠스는 기원전 71년에 크레타섬을 공격했지만 격퇴당하고 만다. 그후 기원전 69년에, 로마는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에게 크레타 공격을 맡겼고, 3년 간의 열렬한 전쟁이 지나고 나서, 크레타는 기원전 66년 로마에 정복되었으며, 메텔루스는 크레타 정복과 복종을 기념하여 "크레티쿠스"(Creticus)라는 아그노멘을 얻었다.
기원전 67년에, 크레타와 키레나이카는 크레타의 고리틴을 중심지로 하는 단일 속주로 통합되었다. 이 조정이 지리적으로 불편했기 때문에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서기 298년에 속주를 분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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