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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대학가요제(MBC 大學歌謠祭)는 문화방송이 주최했으며 현재는 MBC플러스에서 주최하고 있는 대학생 대상의 가요제이다. 명랑한 대학풍토 조성과 건전가요 발굴을 목적으로 시작하였으며, 참가한 대학생들은 창작곡으로 노래 실력을 겨룬다. 이전까지 본선은 문화방송을 통해 생방송 혹은 딜레이 녹화방송으로 진행되었다. 1977년9월 12일 열린 제1회 대학가요제 이후로 매년 개최되었고, 2012년을 끝으로 잠시 폐지된 바 있다.
대학가요제는 1970~80년대에 큰 인기를 누렸으며, 대학가요제의 참가 또는 입상을 계기로 많은 가수들이 데뷔하였다. 배철수, 임백천, 심수봉, 노사연, 김학래, 조하문, 우순실, 김장수, 조갑경, 원미연, 유열, 이규석, 이재성, 이무송, 장철웅, 신해철, 주병선, 이정석, 김경호, 전람회(김동률) 외 등등이 그들이다.
1990년대 들어서 놀거리가 다양해지는 등 사회의 변화 물결에 따라서 MBC 대학가요제의 영향력도 조금씩 감소해져 갔다. 유일하게 2000년대 이후에 주목을 받은 팀으로는 2005년 대학가요제 대상팀인 Ex와 2006년 "무관의 제왕"인 뮤즈그레인(Muzgrain)이 있다. Ex는 정규 음반 1장을 출시하며 가요계에 데뷔했다. 하지만 Ex도 2007년 이후 활동이 거의 없는 상황이며 보컬 이상미만이 개인 활동을 하고 있다. 2008년 은상을 받았던 랄라스윗을 비롯하여 루시아(심규선), 데이브레이크, 슈퍼키드, 좋아서 하는 밴드, 이인세 등 대학가요제 수상경력이 있는 뮤지션들이거나 그들이 주축인 밴드들이 언더그라운드에서 폭넓게 활동중이며 싱어게인의 초대우승자 이승윤 (가수)은 2011년 대학가요제 본선에 진출해 자작곡 '없을 걸'을 선보이며 처음으로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1993년까지는 캠퍼스 외의 공공 공연장에서 개최되었으며, 1994년부터 2011년까지는 대학 캠퍼스 내 특설 무대에서 개최되었다. 2012년은 일산 MBC 드림센터에서 개최되었다. 이후 MBC는 제작비 대비 낮은 시청률 문제를 들며 2013년부터 대학가요제를 개최하지 않기로 했으나 시청자들의 항의와 대학가요제 기수상자들의 서명운동 등의 결과로 2014년부터 대학가요제를 재개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새로운 스타와 히트곡 탄생의 부재,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등장 등을 이유로 2014년 결국 최종 폐지로 결정되면서 대학가요제는 한동안 개최되지 못했다.
초기 대학가요제는 참신한 노래와 신인의 발굴로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고, 대학생의 상품화로 비판받았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지나친 상업화, 경쟁적인 가요제 개최로 수준 저하가 지적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대중의 무관심이 지적되었는데, 그 주요 이유로 대학문화의 변화, 대학의 특수성 희석, 대중의 취향 변화, 가요계 진출 경로 다양화, 가요제의 권위 상실, 실험성이 강한 창작곡 부재 등이 제시되었다.
90년대 이전
90년대 이전의 대학가요제는 그야말로 신규 음악인을 발견하는 ‘등용문’ 이었다. 당시에는 음반산업이 막 일어나기 시작한 시기였고 음악인들의 정규화된 성장 및 데뷔 과정이 없었다. 음악인들은 대학가나 일부 클럽 등에서 공연을 하며 명성을 쌓은 뒤 소수의 프로듀서에 의해 발탁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취약한 미디어 체계, 변화적인 시대상황 등으로 인해 예술에 대한 민중적 갈망은 컸고 MBC 대학가요제는 공영방송 주도의 프로그램으로 압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가요제로 자리매김해갔다. 당시 대학가에는 ‘대학가요제 수상’을 목표로 하고 학업은 뒤로 한 채 밴드활동만 하던 학생들도 다수 있었다.
90년대
90년대 이후에는 음반산업이 기업화하면서 호황기를 이룬다. 특히 이전까지 주류를 이루던 솔로 남성 혹은 가요제 출신의 가수들과 달리 아이돌 가수들이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HOT와 SES 등이 전무후무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 시기부터는 ‘연습생’이라는 이름으로 외모, 실력 등을 키워 갖추게 하는 시스템이 생겼고 기업화된 음반회사들의 자금력 및 기술력을 등에 업고 가요계는 한층 성장한다. 반면, 대학가요제는 아직까지는 과거의 명성을 등에 업고 유지하고 있었으나 상대적으로 기업화된 기성음악에 밀리고 가요제를 통해 ‘일약 스타’로 발탁되는 가수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지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
이후부터는 몇 가지 이유로 대학가요제는 점점 인기가 식고 위세가 약해져 가는데, 첫 번째 이유는 더욱 심해진 음반시장의 산업화이다. 작곡, 편곡, 인재육성 등을 전문화하여 분담하고 자금력으로 키워내는 회사들의 음악에 비해, 한 명이나 소수의 뮤지션들이 전적으로 컨텐츠를 제공해야 하는 가요제의 음악은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또한 음악 관련 기업 들 중 몇몇은 거대기업으로 성장했고 그들은 자신들이 키우는 ‘연습생’ 들을 데뷔시키기에도 바빴다. 이 시기 이후의 대학가요제들은 산업적 논리보다는 창작을 위한 예술인들의 열정으로 유지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또한 인터넷이 보급화되었지만 아직 인터넷 문화가 정착되지 않아 많은 연예인들이 고초에 시달렸다. 최진실, 유니, 장채원 등 많은 연예인들의 악플 자살이 2000년대 중후반에 발생했고 그 즈음에 개최된 대학가요제 참가자들도 수상논란이나 표절놀란, 악플에 시달리고 그로 인해 활동이 제한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대학가요제를 위축시킨 것은 2010년대 이후 케이블 방송등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히트를 치면서부터이다. 이들 오디션 프로그램은 창작곡이 아닌 가창만을 심사하였으며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다고 해서 참여의 폭을 넓혔는데, ‘작곡이 가능한 대학생’이라는 극소수의 인원을 대상으로 하는 MBC대학가요제에 비하여 큰 대중적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2006년 대학가요제
30회 MBC 대학가요제는 2006년 9월 30일 토요일 경북대학교 대운동장에서 펼쳐졌다. 이 30회 대학가요제에서 '뮤즈그레인' 은 네티즌 등에게 인기를 얻었으나 수상을 하지 못해 이슈가 되었다. 수상결과에 대해 네티즌들은 수상자와 심사위원들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이에 해당 프로그램 PD는 별 문제 없다고 일축했다. 또한 2000년대 이후의 수상자나 참가자들이 일부 전공자들을 제외하고는 이후 가수의 길을 걷지 않았으며 참가자 대부분이 당시 대학생이고 소속사 등의 이권 없이 참가한 것을 고려할 때 당시의 논란은 과한 것으로 보인다. 당사자인 '뮤즈그레인' 멤버들은 오히려 이런 반응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2007년 대학가요제
이번에도 일부 판정시비가 있었다. 일부 누리꾼들은 '어쿠스틱 브라더스'가 대상을 받지 못하고 금상을 받은 것이 이상했는데, 그것이 심사위원 박해미가 유독 그 팀에게만 점수를 짜게 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2006년 뮤즈그레인 파동과는 달리 기사화될 정도로 심각하게 문제화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사화된 부분은 대상팀이었던 B2의 노래 표절의혹이다. 물론 당사자인 B2측은 표절이 아니라고 밝혔고, 또한 표절 대상이었던 팀 측에서 표절정도 까진 아니라는 의견을 밝힘으로써 논란이 가라앉았다.
2009년 대학가요제
2009년에도 논란이 있었는데, 인천대학교 대운동장에서 열린 MBC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차지한 이대 나온 여자의 〈군계무학〉이라는 곡이 힙합 듀오 리쌍의 〈광대〉와 드라마 소울메이트의 삽입곡인 누벨 바그의 〈This is not a love song〉과 도입부와 비슷하여 표절 논란이 일었다가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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