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이슬람 반군테러조직

탈레반(다리어: طالبان‎ 탈레반) 또는 탈리반(파슈토어: طالبان 탈리반)은 아프가니스탄 남부를 중심으로 거주하는 파슈툰족에 바탕을 둔 부족 단체에서 출발한 반군 단체이다. 마드라사의 학생 또는 탐구자(students or seekers)를 가리키는 탈레브(다리어: طالب 탈레브) 또는 탈리브(파슈토어: طالب 탈리브)에 파슈토어 복수형 어미 ان 을 붙여 만들었다. 탈레반은 1990년대 중반 활동을 시작, 지도자 무하마드 오마르를 중심으로 결속해 1997년 정권을 장악했으며 이후 2001년 미국의 공격으로 축출되기까지 아프간을 통치했다. '얼굴없는 지도자', '애꾸눈 지도자'로 알려진 무하마드 오마르는 추종자들 사이에 '물라'(mulla;mullah)라는 호칭으로 불렸는데 이는 '탈리브'에 상대되는 말로 '스승'이라는 뜻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을 잡았을 당시 남녀차별 정책으로 인해 세계로부터 많은 강한 비판을 받았다.

탈레반: 역사, 비판, 같이 보기
탈레반
طالبان
아프가니스탄 내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북서 파키스탄 전쟁에 참전
탈레반: 역사, 비판, 같이 보기
탈레반의 기
활동기간 1994년 ~ 1996년(민병대)
1996년 ~ 2001년(정부)
2001년 ~ 2021년 (반군)
2021년 ~ 현재 (정부)
이념 데오반드파 근본주의

파슈툰왈리
종교 민족주의

지도자 아크타르 만수르(영어판)(2015~2016)
하이바툴라 아쿤자다(2016~2021?)
본부 칸다하르 (1996–2001)
카불 (2001–현재)
활동지역 아프가니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파키스탄
병력 45,000 (2001 추산)
11,000 (2008 추산)
36,000 (2010 추산)
60,000 (2014 추산)

75,000 (2021 추산)

유래단체 자미아트 울레마에이슬람
동맹단체 탈레반: 역사, 비판, 같이 보기 파키스탄 탈레반
탈레반: 역사, 비판, 같이 보기 하카니 네트워크
알카에다 알카에다
샤리아 강제운동
코카서스 전선
라슈카르에장그비
헤즈브에 이슬라미 굴부딘
동맹국가 파키스탄 파키스탄
중화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적대단체 탈레반: 역사, 비판, 같이 보기 북대서양 조약기구

탈레반: 역사, 비판, 같이 보기 국제안보지원군
탈레반: 역사, 비판, 같이 보기 이슬람 국가
탈레반: 역사, 비판, 같이 보기 자미아티 이슬라미
[[파일:|22x20px|border |alt=]] 아프가니스탄 민족 이슬람 운동
탈레반: 역사, 비판, 같이 보기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통일당

적대국가 탈레반: 역사, 비판, 같이 보기 미국
캐나다 캐나다
영국 영국
프랑스 프랑스
독일 독일
이탈리아 이탈리아
네덜란드 네덜란드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뉴질랜드
대한민국 대한민국

아프가니스탄은 1979년 옛 소련군의 침공을 계기로 소련의 점령 하에 들어갔으며 이슬람 조직들을 중심으로 미국 등의 지원을 받은 저항세력들이 10년 이상 반 소련 항쟁을 벌였다. 1989년 소련은 아프간에서 군대를 철수시켰다. 아프간에선 1990년대 들어서면서 정전불안이 계속됐고 정부의 공백을 틈타 군벌들이 내전을 벌였다. 굴부딘 헤크마티아르 등 냉혹한 군벌들은 카불 시내를 폭격해 수천 명에서 수만 명의 시민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이같은 혼란 속에서 등장한 탈레반은 엄격한 이슬람 규율로 무장하고 전국을 빠른 속도로 장악해갔다. 카불의 무력한 기득권층과 북부 양귀비 재배 지역에서 아편 매매 수입으로 횡포를 부리던 이른바 마약 군벌들과 경합하다가 1997년에는 정권을 장악했다. 군벌 경쟁자들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지만(군벌들 중 일부는 북부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아프간 공격 때 미군 쪽에 협력했다.), 정국은 다소 안정되는 듯했다.

그러나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오사마 빈라덴을 탈레반이 예전부터 숨겨주고 있었고, 미국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였다. 탈레반은 미국의 힘 앞에 저항하지 못하고 6일만에 주요 도시가 함락되었다. 그러나 2011년까지 미국오사마 빈라덴을 찾지 못했으며, 이는 아프가니스탄의 사람들만 죽인다며 비판을 받아왔다. 2011년 5월 1일 버락 오바마가 서명한 작전에 의하여, 오사마 빈라덴이 사살되었다.

그러나 미국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했으며,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카불을 점령하면서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접수했다.

역사

미국의 공격과 탈레반 정권의 붕괴

탈레반: 역사, 비판, 같이 보기 
아프가니스탄에서 거주하던 오사마 빈라덴 2001년
탈레반: 역사, 비판, 같이 보기 
미 해병 3사단 3연대 3대대의 아프가니스탄 작전 모습

미국은 1993년 소말리아, 수단에서 미군을 공격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아프간에 오래전부터 근거를 두고 있었으며 1996년부터 탈레반 정권의 보호 아래 아프간에 숨어있다고 주장해왔다. 실제로 오사마 빈라덴은 반 소련 전쟁 당시 함께 저항 운동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등지에서 9·11 테러가 벌어지자 미국은 곧바로 알카에다오사마 빈라덴을 범인으로 지목했으며, 그 해 11월 오사마 빈라덴을 색출한다며 아프간 전쟁을 시작했다. B2 스텔스기, 무인정찰기 프레데터 등을 총동원한 미국의 막강한 화력 앞에 탈레반은 변변한 저항도 못 한 채 무릎을 꿇었다. 미국은 이 전쟁에서 무력한 아프간을 상대로 재래식 폭탄으로서는 사상 최악의 폭탄이라는 MOAB 폭탄까지 사용하려 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고 철회했으나, 집속탄을 마구 뿌려 아프간의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피해를 입힌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 정권은 축출됐으며 무하마르 오마르는 동부 파키스탄 접경지대로 피신했다. 그러나 미국의 침공 이래 5년이 지나도록 미군은 빈라덴을 잡지 못했으며 오사마는 2006년말까지도 건재한 채 오히려 남부에서 탈레반을 재규합하고 있었다. 미국이 빈라덴을 '적법한 절차'가 아닌 전쟁으로 죽이려 하고 무고한 아프간인들까지 살상한 것에 대해서는 비판이 많이 제기됐다. 특히 타국의 집권세력인 탈레반 정권을 무력으로 무너뜨린 것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

탈레반: 역사, 비판, 같이 보기 
미 해병 3사단 3연대 3대대의 아프가니스탄 작전 모습

미국은 탈레반을 축출하고 반소련 독립항쟁 지도자의 아들로 신망있는 친미파 지도자였던 하미드 카르자이를 아프간 새 대통령으로 내세웠다. 카르자이는 집안의 명망과 미국의 지원 등에 힘입어 과도정부를 이끌었으며, 이후 실시된 선거에서 정식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카르자이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전후 관리 책임을 맡았으나, 아프간 내 고질적인 정치적 분열과 남부의 계속되는 전투 때문에 정국을 효과적으로 장악하여 난국을 해결하지 못했다. 미국은 아프간을 공격하고 치안유지군(ISAF)이라는 이름으로 다국적군까지 불러들였으나, 탈레반을 완전 제거하는 데 실패했다. 탈레반이 극단주의 때문에 안팎의 비판을 받긴 했으나, 여전히 아프간인들 상당수, 특히 남부 칸다하르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는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판

이슬람 극단주의 정책

탈레반이 집권할 당시만 해도 미국은 옛 소련의 영향력에서 아프간을 빼낸다는 쪽에 무게를 둬 경계를 하지 않았었다. 실제 당시 탈레반 정권은 민주적 투표로 집권한 것은 아니었지만 정통성이 있는 정권으로 인정을 받았다. 국제사회의 공인은 몇몇 나라에서 받는 데 그쳤으나 아프간 내 지지율은 60% 이상이라는 조사결과가 외신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집권 뒤에는 탈레반의 극단적 이슬람 근본주의 정책이 도마에 올랐다. 부정부패를 청산하는 숙청작업에 그치지 않고 언론을 탄압하고 거의폐쇄했으며 서방 문화를 전파하는 언론 활동을 엄금시키고 종교 응애

특히 국제사회를 경악하게 한 것은 여성의 교육을 전면 엄금시키고 모든 여성들을 집안에 감금시킨 탈레반의 조치였다.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 부인 등이 나서서 국제무대에서 탈레반을 비판했던 원인은 바로 탈레반의 여성탄압 정책이었다. 탈레반은 부르카(얼굴과 온몸을 가리는 검은 옷) 착용을 의무화한 것은 물론, 여성들의 사회활동을 전면 금지시키고 심지어 집 밖에 여성이 혼자서, 혹은 여성들끼리 외출하는 것도 막았다. 남성이 특정 여성을 간통했다고 지목하기만 하면 여성을 유죄판결에 돌로 때려죽이게 하는 끔찍한 사형제도도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은 예로부터 여성들이 남성들과 동등한 교육을 받았고 사회활동도 다른 이슬람권 국가들보다 훨씬 활발하게 벌였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여성들에 대한 이같은 탄압이 가져온 충격은 더욱 컸다.

2001년 3월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바미얀 석불을 폭파시켜 아프가니스탄과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렸고 탈레반의 극단적인 이슬람 근본주의는 같은 이슬람주의를 내세운 이란에서도 비판을 받았다.

바미얀 불상 파괴

2001년 3월 8일, 탈레반은 바미얀의 불상 두개다이너마이트로 폭파했다. 바미얀의 불상 두개는 바미얀의 절벽에 조각된 두 개의 불상으로서, 하나는 38 미터 높이이며 507년에 제작되었다. 다른 하나는 높이 53 미터이며 554년에 제작되었다. 불상을 폭파한 후 탈레반은 유네스코와 많은 국가들의 비판을 받았다. 폭파의 의도는 분명하지 않다. 탈레반의 지도자 물라 모하메드 오마르는 처음에는 아프가니스탄 유적의 보존에 대해 지지를 표방했었고, 불교가 주요 국교인 국가들 중 돈이 많은 일본이 바미얀 불상의 보존에 소요되는 비용을 지불할 것을 제안했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후, 우상에 대한 부정적인 성명이 발표되었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종교적 우상이 되는 물건들은 박물관 내에 있는 것까지도 모두 파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발하여 많은 수의 오래된 불교 예술품을 소유하고 있는 파키스탄 정부는 바미얀 불상을 파괴하지 말 것을 UN 등 각 국가와 더불어 탈레반측에 촉구했으나, 탈레반이 이를 무시하고 끝내 그들의 주장을 국제사회에 관철시키고자 그들의 계획을 강행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아랍 에미리트 연합은 이러한 탈레반의 강경한 행위를 비판했다. 순회대사로 임명된 탈레반의 고위급 대표자인 시드 라마툴라 하셰미는 2001년 3월 미국을 방문하여, 탈레반의 행위는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며, 전쟁으로 인하여 손상되었던 불상을 수리하기 위한 자금 사용을 반대한 유네스코와 몇몇 서방 정부들에 대하여 분노를 표출하였고, 이와 더불어 자금을 가뭄 극복을 위해 쓰려 했다고 주장하였다.

같이 보기

관련 항목

관련 조직 및 세력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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